그날 저녁, 퇴근길에 낯선 소리에 발길을 멈췄다. 거리 한복판에서 불협화음처럼 날 선 고성이 터졌고, 사람들은 마치 구경거리라도 된 양 둥글게 몰려들었다. 손에는 각기 핸드폰이 들려 있었고, 그들의 눈빛은 무심한 듯 호기심으로 일렁였다.
카메라는 흔들렸고, 그 안에 담긴 장면은 점점 또렷해졌다.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고, 누구도 묻지 않았다. 기록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관찰자였다.
무의식적으로 그는 군중 사이를 비집고 걸음을 옮겼다. 소란의 중심에는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조용히 남자를 향해 발을 뻗었고, 남자는 구석에 웅크려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대신, 행동이 조용한 명령처럼 이어졌다. 병을 꺼내 마신 뒤, 남자의 얼굴 위로 그 병에 담긴 물을 천천히, 아주 의도적으로 흘려보냈다.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공기마저 침묵했다.
그는 조용히 그녀 곁에 섰다.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하세요.”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엔 잊힌 질서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짧은 정적 후, 비웃음을 머금은 듯한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말없이, 다시 발을 들어 남자 쪽으로 뻗었다. 마치 모든 경고를 무시하듯, 느긋하고 태연하게.
그리고는 천천히 가방을 뒤져 두툼한 현금 다발 하나를 꺼냈다. 말없이 그의 앞에 떨어뜨리듯 던졌다. 종이 돈은 천천히 흩어졌고, 거리 전체가 정지된 듯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은 무겁게 그를 향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군중 속에 묻혀 사라지기 직전,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
그날 밤, 그는 평소처럼 헬스장에 들렀다. 쇳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지는 공간에서 그는 묵직한 중량을 들어 올리며 말없이 그날을 정리하려 애썼다.
며칠 뒤, 점심시간. 테라스에 앉아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던 그의 앞에,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말없이 다가와 그의 손끝에 있던 담배를 빼앗아 들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타인처럼.
그녀는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신고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거든.”
비웃음을 삼킨 듯한 어조. 인사도 없었고, 명함도 없었다. 그저 조용한 선언처럼 던져진 말이었다.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나서는 걸 싫어해요. 그냥 모른 척하고 살지, 그래야 오래 살아남는 거죠.”
그녀는 고개를 젖힌 채, 시선조차 주지 않고 돌아섰다.
그의 손끝엔 여전히 담배의 잔열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입가에 맴도는 건, 그 문장이었다.
💬 블로거 코멘트
이 장면은 침묵의 균열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차가운 행동과 조용한 저항, 그리고 법이라는 외피 뒤에 숨어 있던 인물의 내면이 점차 드러납니다. 앞으로 이 두 인물의 충돌이 소설의 중심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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